본문 바로가기
일상의 이야기 (Diary)

2023-03-23 오늘의 일기

by woody88 2023. 3. 23.

오늘은 꼭 일기를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컴퓨터 방 책상 앞에 앉았다. 

내일은 나의 36번째 생일이자 인생에서 아주 큰 선물을 받는 날이다. 

바로 첫 아이의 탄생날이다. 

 

사람들은 '아빠랑 아들이랑 생일이 같은거에요?' 물어본다. 그렇다. 의도치 않게 아들과 내 생일이 같다.
심지어 12간지 시간대도 오시(11시 -13시)로 동일하다. 날짜와 시간만 동일할 뿐 일주는 같지 않다. 역술가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아들의 일주가 하늘이 내린 축복이 거의 다 들어가 있다고 한다. 특히 '아주 귀하게 자랄 겁니다' 라는 이야기에 나와 아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는데 그 때 깨달았다. '아 - 우리도 아들바보. 부모가 되었구나' 그리고 소원했다. 나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귀하게 자라기를. 든든한 부모가 또 아빠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. 

 

그리고 아주 오래 전 내가 아버지의 아들이었을 때가 떠오른다. 

내 아버지는 시골에서 자랐고, 할아버지의 술시중을 했고, 손재주가 좋았다. 

20대 청년 시절 일찍 서울로 올라와 일을 시작했는데 안 해본 일 없이 거의 다 했다고 한다. 그리고 어머니와 결혼해 형과 나를 슬하에 두었다. 아버지는 형제들 중 가장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. 그건 운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라 치열하게 노력했기 때문이다. 어린 시절 아버지는 자신의 고생과 가정을 먹여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한 그 태도를 알아달라 하셨다. 아침에 일찍 나가 저녁 늦게 오셨는데, 노동으로 몸이 고달파 소주 한 병을 매일 드셨던 기억이 있다. 

 

그런 아버지에게는 작은 바램이 있었다. 

그건 가족들이 저녁식사 만큼은 함께 하는 일이었다. 그런데 어린 시절 나는 그 바램을 종종 따르지 않았다. 아주 어렸을 때는 반찬 투정을 했고, 머리가 조금 커졌을 때는 학교일 직장일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그 식탁에 함께 하지 않았다. 

형이 결혼을 하고 분가를 했고, 내가 직장 생활에 더 지쳐갔을 때 그 식탁을 지킨 건 아버지 홀로였던 적이 많다. 

 

그런 아버지가 가까이 하신 건 TV 였다. <나는 자연인이다> 류 예능을 즐거 보셨는데. 못된 아들 심보였는지 괜히 아버지에게 "아빠 이거 다 대본이에요. 연기에요." 산통을 깨 놓는 짓이나 하는 철없는 아들인 기억이 있다. 

아버지는 '진짜냐? 이게 다 대본이라고?' 놀라셨지만 그래도 TV를 특히 윤택 MC 와 이승윤 MC를 좋아하셨다. (그들의 나이를 물어보셨는데, 알려드릴 때마다 신기해하셨다. 아마 인터넷으로 연예인들의 나이를 바로 찾을 수 있다는 것에 더 신기해하셨을지도 모른다) 

 

그리고 내가 결혼을 했다. 분가를 했고, 부모님 댁과 비교적 가까운 곳 빌라가 첫 신혼집이었다. 

신혼집의 도배를 아버지가 해주셨고, 와이프와 난 불고기를 꺼내 일이 끝난 아버지와 식사했다. 아버지는 부끄러움이 많으셨다. 자식의 일이라면 기꺼이 나서주셨지만 돕고 나면 슬며시 아무일 아니라는 듯, 조용히 사라지셨다. 그 날 식사도 그랬다. 더 맛있는 것을 드리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그 정도로 만족하셨다. 

 

이 후 결혼생활은 여러가지 핑계거리로 부모님과의 거리를 더 멀게 만들었다. 그리고 더 가끔씩 이제는 손님처럼 우리 집에 갔을 때 아버지는 여전히 좋아하시는 쇼파 자리에서 TV를 보고 계셨다. 달라진 건 조금 더 연로해보이는 모습, 더 얇아진 종아리과 팔 근육이었다.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왠지 안아보고 싶었나 보다. 떠날 때 마다 꽉 안아드렸는데, 점점 더 가벼워 지는 느낌이 들었다. 그 가벼움이 마음에는 무거움으로 다가왔다. 

 

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조금 씩 정리해약겠다. 존경할 만한 분이었다. 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셨고,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. 친구처럼 옆에 있어 주었고 세상 앞에 언제나 당당했다. 비록 너무 깊게 가족에 헌신한 나머지 자신의 건강 관리는 잘 못하셨지만.. 그래서 괜히 사랑하는 가족들이 아버지를 잔소리하게 할 빌미를 주었지만.. 아버지는 나와 형을 귀한 손님으로 여겨주셨고, 사랑만을 주셨다. 

 

이제 12시간도 남지 않았다. 나는 내 아들에게 어떤 아버지가 될까. 자식을 낳고 사랑으로 양육하겠지만 언젠가 가족에 대한 작은 바램. 저녁 식탁에는 가족 모두가 오순도순 모여 식사를 하자 - 는 그 작은 염원도 바라기 힘들 때, 그 때 내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. 웃으면서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한 잔 할 생각을 하니, 그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미소가 지어진다. 

 

건강만 해라. 공부는 못해도 된다. 든든한 가족이 되어 주마. 너는 나의 귀한 손님이다. 우리 집에 머무는 동안 사랑만 받아라. 그거면 된다.